한솔아파트 주변, 원래는 뭐였을까 | 삼성동 개발의 숨은 역사
한솔아파트 주변, 원래는 뭐였을까
신군부가 강탈한 사옥, 조달청 건물이었던 구청 — 삼성동 개발의 숨은 역사
"한솔 주변엔 왜 이렇게 작은 단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을까?" 매일 지나다니면서도 잘 모르는 이 동네의 전사(前史)가 꽤 흥미롭습니다.
압구정이나 대치동처럼 처음부터 거대한 바둑판식 대단지로 일괄 개발된 게 아니라, 대형 국책 아파트와 명문고 사이사이 자투리 땅에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소형 단지들이 하나둘 들어차며 지금의 모습이 완성됐습니다.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신군부의 사옥 강탈극, 조달청 건물이었던 구청까지 — 생각보다 파란만장합니다.
- 강남 개발은 ✓ 확정 1968년 김신조 사건(무장공비 침투)을 계기로 안보상 필요에서 가속화됐고, 1970년 남서울개발계획으로 본격화됐습니다.
- 이 일대 개발은 ✓ 확정 1974년 영동AID차관아파트(1,680세대)와 ✓ 확정 1976년 경기고 이전이라는 두 앵커에서 시작됐습니다.
- 아이파크 삼성 부지는 신군부가 강탈했다가 소송 끝에 되찾은 땅이고, 강남구청은 50년 넘게 조달청 창고 건물을 그대로 쓰다가 최근 이전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 2026년 2월 정부가 현 강남구청 부지에 주택 공급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 부지 자체가 다음 정비사업 대상이 될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왜 하필 강남이었나 — 안보가 만든 신도시
이 동네 이야기를 제대로 하려면 강남 개발 자체의 출발점부터 짚어야 합니다. 1963년 서울로 편입될 때만 해도 이 일대는 경기도 광주군에 속한 평범한 시골이었습니다. 개발의 결정적 계기는 부동산이 아니라 안보였습니다.
이 12개 공기업 청사 건립계획이 바로 뒤에서 다룰 조달청이 삼성동에 자리 잡게 된 직접적인 배경입니다. 정부가 강제로 관공서를 옮기고, 명문고를 이전시키고, 대단지 아파트를 지어 인구를 채워 넣는 방식의 '만들어진 신도시'였던 셈입니다.
이 지역 개발의 두 축
한솔아파트 일대 개발사를 이해하려면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선 두 개의 거대한 앵커부터 알아야 합니다.
이 두 거대한 축 사이사이에 끼어 있던 구릉지·나대지·저층 상가 필지들이 바로 오늘날 한솔아파트를 비롯한 주변 소형 단지들의 모태입니다.
소형 단지들의 '과거와 변모'
1970~80년대 대단지들이 자리를 잡는 동안, 주변 자투리 땅은 소규모 빌라촌이나 공터, 기업 자재창고로 쓰였습니다. 1990년대 말 규제 완화와 맞물려 민간 건설사들이 이 땅을 사들이며 고밀도 소형 아파트로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솔아파트 — 삼성동 4-6번지, 1998년 준공
과거 AID차관아파트와 삼성로 사이에 끼어 있던 길쭉한 저층 주거지·야산 자락이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한솔그룹 계열의 한솔건설이 이 자투리 필지들을 매입해 틈새 택지 개발에 나섰습니다. 부지가 좁고 길쭉해 대단지를 짓기 어려웠던 탓에, 타워형·일자형 2개 동을 조합해 19층으로 올렸습니다. IMF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 확정 1998년 말 준공되며, 노후 저층 주택가 사이에서 가장 먼저 고층으로 우뚝 선 '새 아파트'가 됐습니다.
서광아파트 — 삼성동 2번지, 1998년 준공
강남구청역 쪽 서광아파트 부지는 '서당골'이라 불리던 나지막한 시골 구릉지였습니다. 영동지구 개발 초기엔 단독·연립주택이 난개발 형태로 들어찼던 곳입니다. 서광건설산업이 이 노후 주택가 필지를 모아 한솔과 거의 같은 시기인 1998년 2개 동으로 준공했습니다. 부지가 협소해 주차·커뮤니티 시설이 부족하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고,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별동 증축형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라는 건 1편에서 다룬 그대로입니다.
중앙하이츠·롯데관광 — '체비지'에서 태어난 단지
힐스테이트 뒤편 이면도로의 중앙하이츠(1999년, 298세대)·롯데관광아파트(1996년, 38세대)는 조금 다른 태생입니다. 1970년대 '영동지구 구획정리사업' 당시 개발 비용 충당용으로 남겨둔 '체비지'였거나, 개인에게 불하된 후 오랫동안 가설건축물·창고로 쓰이던 땅입니다. 이곳들이 1990년대 주택 건설 붐을 타고 아파트로 탈바꿈했습니다.
주변 '거물급' 단지들의 반전 과거
소형 단지들이 틈새를 메우는 동안, 주변을 감싸는 대단지·랜드마크들도 흥미로운 전사를 갖고 있습니다.
| 현재 모습 | 과거 모습 | 비화 |
|---|---|---|
| 아이파크 삼성 (46층, 449가구) | 한라건설→현대양행 사옥 | 1980년 신군부가 현대양행을 한국중공업으로 강제 이관, 1988년 현대산업개발이 소송 제기 → 1996년 대법원 승소 → 1999년 반환받아 본사로 사용 → 2004년 아파트 준공 |
| 삼성 힐스테이트 1·2단지 (2,070세대) | 영동AID차관아파트 | 1974년 준공 5층 30동 1,680세대 저층 아파트가 2008년 12월 재건축으로 대단지 브랜드타운 완성 |
| 삼성동 센트럴아이파크 (416가구) | 상아3차(1983년, 230가구) | 2011년 조합 설립, 조합원 ✓ 확정 100% 동의로 재건축 속전속결 진행, 2018년 4월 입주 |
조달청, 그리고 50년 셋방살이 중인 강남구청
조달청은 원래 뭐 하던 곳인가
조달청은 ✓ 확정 1949년 외국 원조물자를 총괄 관리하기 위해 설립됐습니다. 6·25 전쟁 중엔 구호물자를, 이후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필요한 물자·시설재 도입을 담당하며 사실상 국가 재건의 물류 창구 역할을 했습니다. 이 조달청이 1975년 앞서 말한 12개 공기업 청사 건립계획의 일환으로 삼성동에 청사를 지었고, 이 건물이 지금 강남구청이 쓰고 있는 바로 그 건물입니다. 참고로 현재 조달청 본청은 정부대전청사로 옮겨간 지 오래입니다.
강남구청 자리, 이렇게 세 번 바뀌었다
강남구청의 역사는 ✓ 확정 1975년 10월 1일 성동구 영동출장소에서 승격되며 시작됩니다. 그런데 정작 청사 위치는 계속 바뀌었습니다.
신청사 잔혹사 — 20년 가까이 못 옮기는 이유
1975년에 지어진 건물을 2001년 리모델링해 그대로 쓰고 있으니, 이미 50년이 다 되어갑니다. 신청사 논의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매번 무산됐습니다.
| 시기 | 내용 | 결과 |
|---|---|---|
| 2007년 | 현 청사를 민간에 매각하고 매각대금으로 신청사 건립 검토 | 테헤란로 일대 등 조건에 맞는 부지 확보 실패로 무산 |
| 2017년 | 수서역 인근 부지에 신청사 건립 검토 | 구체화되지 못함 |
| 2022년 | 강남구가 구청·도시관리공단·국기원 부지를 묶어 세텍(SETEC) 부지와 교환 건의 | 서울시 "부적합" 판정으로 반려 |
| 2023년 | 오세훈 시장, 세텍 복합개발(MICE 중심지) 선언. 강남구는 세텍-구청 부지 맞교환 재제안 | 서울시·강남구 입장 차 지속 |
| 2024년 9월 | 서울시 용역에서 세텍 부지 배정 비율 최대 33% 제시 | 강남구 요구(40~45%)에 못 미쳐 협상 계속 |
| 2026년 1월 | 정부, 현 강남구청 부지에 주택 공급 계획 발표 | 이전 논의 급물살, 강남구청역 역명 변경 가능성 대두 |
이 대목이 흥미로운 이유 — 나무위키 등 자료에 따르면 강남구는 "현재 사용 중인 건물이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은 광진구청처럼 위험하다는 판정이 나올 때까지는 조달청사 건물을 그대로 유지할 예정"이라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7편에서 다룬 안전진단 D등급 이슈가 아파트뿐 아니라 관공서 건물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2026년 정부의 주택 공급 발표대로 진행된다면, 강남구청 부지 자체가 다음 정비사업 대상지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덤 — 강남구청장이 만든 '재건축 드림 지원팀'
현 조성명 강남구청장은 취임 후 강남구 내 재건축·재개발을 지원하는 전담 조직 '재건축 드림 지원팀'을 만들었습니다. 인터뷰에서 강남구 내 ✓ 확정 85개 구역에서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진행 중이라며, 자료 제공과 주민 의견 수렴을 한 곳에서 처리해 속도감 있게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여기서 접촉 창구를 나눠볼 필요가 있습니다. 5편에서 다룬 무료 사업성분석은 200세대 미만 소규모재건축 요건에 해당하는 사업지 전용이라, 현대(198)·석탑(139)·푸른솔(61)·우정에쉐르(40)처럼 개별 단지 단위로는 신청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6편에서 다룬 5개 단지 통합(701세대)은 200세대를 넘어 일반 재건축 트랙으로 가야 하므로 이 무료 프로그램 대상은 아니며, 이 경우엔 재건축 드림 지원팀 쪽으로 문의하는 것이 더 맞는 창구입니다.
번외 — '삼성동'은 삼성그룹과 무관합니다
많은 사람이 헷갈리는 부분인데, 삼성동이라는 지명은 삼성그룹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일제강점기인 ✓ 확정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당시, 봉은사마을·무동도마을·닥점마을 세 마을을 합쳤다고 해서 '삼성(三成)'이라 명명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한자부터가 삼성그룹의 '三星'과 다릅니다. 다만 이후 한국종합무역센터(코엑스)와 삼성그룹의 강남 진출이 겹치며, 이름과 기업 이미지가 우연히 서로를 강화하는 효과를 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왜 이 지역엔 소형·나홀로 단지가 유독 많을까
결과적으로 한솔아파트 주변에 200~300세대급 소형 단지가 밀집하게 된 이유는, 이 지역이 '정부 주도 대형 공공 개발'과 '민간의 자생적 개발'이 가장 치열하게 충돌하고 타협한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AID아파트·경기고·봉은사 같은 굵직한 덩어리가 자리 잡고 남은 '쪼개진 사유지'들을, 1990년대 말 건설사들이 샅샅이 찾아내 용적률을 최대한 끌어올려 고층으로 올린 결과물이 지금의 모습입니다.
단지 규모는 작지만 강남구청·대치동 학원가 접근성·지하철 교통망 등 강남 핵심 인프라를 그대로 공유하는 덕에, 과거 시골 야산 지대가 지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밀도 높고 값비싼 주거 구역 중 하나로 채워졌습니다.
이 역사가 지금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흥미롭게도 힐스테이트 2단지(구 AID차관아파트, 2008년 재건축)는 최근 현대건설의 '더 뉴 하우스(No-move)' 이주 없는 리모델링 신사업의 시범 사업지로 선정됐습니다. 2000년대 재건축이 완료된 단지도 20년 가까이 지나면 다시 시설 개선 수요가 생긴다는 뜻으로, 2편에서 다룬 재건축·리모델링 사이클이 이 동네에서는 이미 한 바퀴 돌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센트럴아이파크(상아3차)가 조합원 100% 동의로 재건축을 속전속결로 밀어붙였다는 사실도 참고할 만합니다. 6편에서 다룬 통합재건축이나 소규모재건축 모두 결국 동의율 확보 속도가 사업 기간을 좌우하는데, 상아3차는 그 극단적인 성공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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